[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탄소발자국과 ESG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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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환경 문제는 곧 인류 생존의 문제
지속 성장 위한 경영 혁신 이뤄야
건축에서도 탄소 감축 노력 필수

애플의 ‘아이폰 15’가 국내에서 13일 정식 출시된다. 지난달 ‘아이폰 15’ 시리즈와 애플워치 등의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을 때 국내에서는 ‘아이폰 14’ 출시 때보다 반응이 시큰둥했다. 게다가 지난 8월에 출시된 삼성의 ‘갤럭시 Z5’ 플립과 폴더의 반응이 뜨거웠기에 상대적으로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의 신모델이 지난 모델과 차별성이 없자 숫자만 바뀐 거 아니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지난 9월 13일 전 세계에 실시간 생중계된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 중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팀 쿡이 등장한 ‘어머니 대자연’(Mother Nature)이라는 광고를 봤다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자네가 2020년에 약속했지. 2030년까지 애플의 전체 탄소발자국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무슨 대단한 환경주의자인 양, 모두가 공유하는 지구를 위해 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우리에게 있다면서 말이야.”


‘어머니 대자연’의 말에 팀 쿡은 모든 포장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 알루미늄을 쓰며 가죽 제품을 퇴출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자체적으로 이미 100% 청정에너지를 쓰고 항공운송을 줄이고 물 사용량도 줄이고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고 있다고, 대단한 환경주의자인 양 한 게 아니라 실제로 환경을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30년이 되면 모든 애플 제품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넷제로’가 될 거라고 선언한다.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발자국 제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탄소발자국은 제품을 만들 때 원료 채취, 생산, 수송·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으로 나타낸 지표다. 생산과정에서 애플로 인해 탄소 배출이 늘어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은 애플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 역시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중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이노텍 등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모두 12곳이다. 그렇다면 애플에 납품하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부품을 생산할 때 모두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기업의 협력업체들도 탄소중립을 실천해야 한다. ‘탄소발자국 제로’, 이것이 바로 애플이 말한 혁신이다. 그 어떤 혁신도 ‘지속가능한 지구’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환경 문제는 인류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 기업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익 추구였다. 생존과 성장을 향한 기업의 투쟁은 과학, 기술, 산업 등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그에 비례해 비환경적, 비윤리적인 행동은 결국 인류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를 겪으며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경제적인 이윤보다는 윤리적 가치를 함께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경영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단기적 성과를 위한 이윤 창출이 아니라 환경, 에너지, 사회, 안전, 정보 보호, 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성과인 ESG 경영을 핵심 가치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을 위기에 빠트린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적용되는 친환경, 사회적 책임, 기업의 투명성과 윤리성 같은 평가의 잣대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때마침 지난 9월 20일 KNN 주최로 ‘제2회 동남권 ESG 포럼’이 열렸다. ESG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이해가 부족한 지역 기업에게 ESG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대기업뿐 아니라 이제 중소기업들에 있어서도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있어 가시적인 성장으로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 ESG 경영에 투자하는 것은 비용이나 인력 면에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건축에서도 ESG는 중요하다. 2020년 기준, 건설산업 전 생애주기에 걸쳐 전 세계 에너지 생산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의 약 47%가 건설산업 부문에서 발생한다고 하니 탄소 감축이 중요하다. 건축물의 공법과 건축자재에 대한 탄소 저감, 설비나 장비만 바꾸는 문제가 아닌 주거문화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어 쉽지는 않다. 산업재해, 공정거래, 노동 관련 부분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가기 힘들어도 가야 하는 길이 있다. 혁신은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발걸음에 새겨진다. 그렇게 새겨진 발걸음이 남긴 흔적은 역사의 켜로 쌓인다. 미래 세대를 위해 남기지 말아야 할 것, ‘탄소발자국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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