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배출 잘하는데 재활용률 왜 낮나
반쪽짜리 EPR 제도 헛점 수두룩…
순환경제 선택 아닌 필수 시대

‘ESG(EnvironmentㆍSocialㆍGovernance) 경영’이 화두로 떠올랐다.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는 거다. 하지만 정작 환경보호의 기본이자 첫걸음인 ‘재활용’에 신경 쓰는 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재활용도 제대로 못하는 기업이 친환경 경영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풀어낼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나아지지 않는 재활용 현실과 기업의 책임을 들여다본 이유다. 

제품 생산자의 재활용 책임 의무를 강화한 EPR 제도가 2003년 도입됐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제품 생산자의 재활용 책임 의무를 강화한 EPR 제도가 2003년 도입됐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직장인 김현웅(45)씨는 집에서 ‘쓰레기 담당’이다. 그에게 매주 하루는 ‘재활용 분리배출하는 날’이다. 그 나름 분리배출을 잘 해왔다고 자부했던 김씨. 하지만 지난주 도우미 아주머니(자원관리도우미)에게 혼쭐이 났다. “이렇게 기름기가 남은 김자반 봉투는 일반쓰레기로 버려야죠.” 

김자반 봉투엔 분명 ‘분리배출’ 표시가 붙어있었다. 게다가 김씨는 봉투 안 내용물을 모두 비우고, 물로 헹구기까지 했다. 문제는 기름기가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더 열심히 닦아서 버려야 하나.” 평소 플라스틱이나 유리 용기 안의 내용물을 모두 씻어내고, 말려서 버리는 김씨는 문득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김씨의 사례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김씨처럼 비교적 정성스럽게 분리배출하는 이들은 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폐기 재활용률은 59% (2013년 기준)로 독일(65%)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분리배출 이후 재활용률은 높은 수준이 아니다. 폐기물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30%대에 머물러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활용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분리배출해도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게 많아서다. 돌려 말하면, 분리배출 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얘기다. 컵라면·화장품 용기의 예를 들어보자. 컵라면 용기는 ‘플라스틱 PS(폴리스티렌)’ 재질로 분리배출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단순히 씻어서 버려선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빨간 라면국물 자국이 남아있어서다. 물론 이를 녹여서 재생원료로 만들 순 있다. 하지만 색이 남은 탓에 질이 떨어져 재활용 업체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컵라면 용기를 재활용하려면 소비자가 햇빛에 이틀간 말려 얼룩을 지운 후 분리배출해야 하는 이유다. 

‘플라스틱 OTHER’로 표기된 대부분의 화장품 용기도 재활용이 어렵다.[※참고 : 환경부는 플라스틱 재질을 HDPEㆍLDPEㆍPPㆍPSㆍPVCㆍOTHER 등 6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중 OTHER는 두가지 이상의 플라스틱 혹은 다른 재질과 섞인 ‘복합재질’을 말한다.] 

복합재질은 단일재질과 달리 재활용이 어려워 선별장에서 쓰레기로 버려진다. 커피믹스 봉투나 홍삼팩과 같은 복합재질 비닐류(비닐 OTHER 표기)도 마찬가지다. 일부는 태워서 열에너지를 얻는 고형연료(RSF)로 쓰이지만 나머지는 쓰레기로 버려진다. 열심히 씻고, 말리고, 분리배출하는 소비자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셈이다. 

당연히 소비자로선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뭐 하길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숱한 기업이 환경보호가 중심축 중 하나인 ‘ESG 경영’을 선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도대체 분리수거 제품의 재활용률이 높지 않은 이유는 뭘까. 

■반쪽짜리 EPR 제도 = 먼저 조금은 낯선 용어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ㆍ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를 살펴보자. 2003년 도입된 EPR 제도의 골자는 제품의 ‘생산-판매’까지만 아우르던 기업의 책임을 제품의 ‘생산-판매-소비-폐기-재활용’ 단계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EPR 제도가 규정한 재활용 의무 대상 품목은 4개 포장재(종이팩ㆍ금속캔ㆍ유리병ㆍ합성수지)와 7개 제품군(윤활유ㆍ전지류ㆍ타이어ㆍ형광등ㆍ양식용 부자ㆍ곤포 사일리지용 필름ㆍ김발장)이다. 

이에 따라 이들 제품을 생산ㆍ판매해 수익을 얻는 국내 5300여개 기업은 재활용분담금을 걷어 폐기물의 감량과 재활용을 주도한다.[※참고 : 재활용 분담금은 재활용 의무를 공동으로 이행하기 위해 설립한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에 납부하는 금액을 말한다.]

주택가를 중심으로 여전히 분비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숱하다.[사진=뉴시스]
주택가를 중심으로 여전히 분비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숱하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이렇게 모아진 분담금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업체들이 책정한 2021년 재활용 분담금 단가는 PET의 경우 1㎏당 172~372원이다.  환경부(인하대 산합협력단)가 2013년 산출한 플라스틱 용기 재활용 비용(1㎏당 637원)과 단순 비교해도 크게 못 미치는 액수다.

그렇다고 분담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분담금 대부분이 재활용 단계의 최상단에 있는 재활용업체에 들어간다는 점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인력이 필요한 탓에 분담금이 절실한 폐기물 수거ㆍ선별업체는 정작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최근 수년간 재생원료값이 떨어지면서 일부 폐기물 수거ㆍ선별업체들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는데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서울시 한 선별업체 관계자는 “선별 과정에서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잔재물이 절반가량이다”면서 “잔재물을 처리하는 비용이 1톤(t)당 12만~15만원으로 이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업체까지 나올 정도”라고 꼬집었다.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일부 재활용업체만 지원하는 현행 EPR 제도를 개선함과 동시에 수거·선별업체가 지속성장할 만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EPR 분담금은 현실화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울러 지원 사각지대에 있는 수거·선별업체에도 분담금이 적절하게 지원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기업들이 EPR 분담금을 내는 것만으로 재활용 의무를 다했다고 인식해선 안 된다.” 

■길 잃은 재생원료 = 사실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재활용해서 만든 ‘재생원료’를 기업들이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재생원료가 있어도 값이 비싸면 기업들이 사용하지 않는다. 국제유가가 상승하거나 원자재값이 올라갈 때 재생원료 사용량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건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 정부는 재생원료의 의무적 사용비율을 설정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할 때 재생원료를 30%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채택한 재생원료 의무사용의 범위는 협소하다. 환경부는 종이ㆍ유리ㆍ철에만 의무사용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플라스틱은 제외돼 있다.[※참고 : 환경부는 재생원료 의무사용 제도를 플라스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긴 했다.] 

이 때문인지 국내 기업들은 경제논리에 따라 새 플라스틱 원료ㆍ재생원료 등 소재를 선택한다. 원자재가격이 상승할 때에만 재생원료 수요가 증가하는 건 대표적 사례다. 환경단체들이 “기업이 제품을 생산할 때 재생원료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순환경제가 이뤄지려면 재활용 시장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생산자들이 경제 논리에 따라 재생원료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재생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화 이사장은 “재생원료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선 생산단계부터 플라스틱 재질을 개선해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참고 : 환경부는 2030년까지 재생원료 사용비율을 30%까지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방법이 이상하다.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게 아니라 재생원료 사용에 비례해 EPR 분담금을 감면해주는 방법을 택했다. 기업이 얼마나 호응할지 알 수 없다.] 

■불구경하는 환경부 = 앞서 언급했듯 세계 각 정부는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EU가 2015년 ‘순환경제 패키지’를 채택하고 생산단계부터 재활용을 고려하는 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는 건 대표적 사례다. 

그중 네덜란드는 2050년까지 재활용이 가능한 원자재만 사용하는 순환경제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업의 순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는 2020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시작으로 2021년 플라스틱 빨대, 스티로폼 용기 등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강화해가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큰 그림’은 고사하고 가이드라인마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생원료 의무사용비율조차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은 건 그 일단이다.

홍수열 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가 분리배출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좋은 재생원료를 만들어서 재활용이 잘 되도록 하는 데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환경부는 재생원료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부터 목표 설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재질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소비자가 어느 선까지 분리배출을 할 것인지, 선별장에서 어떻게 선별할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환경부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제시하고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 

소비자가 분래배출을 열심히 하는 데도 재활용률이 낮은 덴 여러 원인이 있다.[사진=연합뉴스]
소비자가 분래배출을 열심히 하는 데도 재활용률이 낮은 덴 여러 원인이 있다.[사진=연합뉴스]

물론 이 세가지 문제만 해결한다고 해서 당장 재활용률이 높아질 순 없다. 뿌리 깊은 문제점들도 많아서다. 무엇보다 분리배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가의 분리배출 문제는 심각하다.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매대가 없고 관리자가 없다 보니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폐기물 수거업체 관계자 말을 들어보자.

“분리배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 치킨 상자에 은박지와 닭뼈를 그대로 버리거나 플라스틱 용기 안에 음식물을 그대로 남긴 채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리배출을 제대로 안했다고 수거를 안할 수도 없고, 선별장에 가져다 주면 재활용되지도 않는 걸 왜 가져왔느냐며 돌려보낸다. 처리 비용은 고스란히 수거 업체 몫이다. 종량제 봉투에 담겨 일반쓰레기로 버려진 재활용품도 마찬가지다. 소각장에서 재활용품이 들어있다고 ‘페널티’를 주면 해당 수거차는 수일간 ‘(소각장)출입 정지’를 당한다. 소비자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을 중의 을’인 수거 업체만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는 셈이다.”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기업과 소비자, 정부, 지자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큰 그림과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하는 정부의 몫이 중요하다. 재생원료를 사용하고 재활용 제품을 만드는 기업 역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제야 “분리배출 잘하는데 재활용률은 왜 낮을까”란 의문이 풀릴 게다. 갈 길이 아직 멀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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